초대회장 김종수 박사님과의 인터뷰
현재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요?현재 저는 한국천문연원의 책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ALMA 한국 프로젝트의 PI를 맡고 있습니다. 2014년 8월부터 한국은 공식적으로 ALMA 국제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한국 천문학자들이 ALMA 망원경을 사용하여 좋은 논문을 쓰게 하고, 미래 ALMA 망원경을 위해 성능을 개선하는 것입니다. 또한, 수치 계산을 통한 성간 난류, 별 탄생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면, 최근에는 전파, 적외선 관측을 통한 별 탄생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과학 연구보다는 프로젝트 관리에 많은 시간을 쓰고 있습니다.
대학원 시절에는 어떤 연구를 하셨나요?이론적인 건데, 어떤 시스템이 안정하냐 불안정하냐 하는 것은 평형 시스템에 섭동을 줬을 때 그 섭동이 계속 커지는 건지 작아지는 건지를 보고 판단을 해야 해요. 제가 관심 있었던 것은 거대 분자 구름 형성의 한 가지 원인인 Parker instability 연구였어요. Parker가 분석했던 것에 더해서, 예를 들어서, 우리 은하 중력장이 균일하지 않을 때나 우주선 (cosmic ray)이 있을 때, 또는 무작위 자기장 성분이 있는 경우에 선형 분석을 통하여 계의 불안정성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였습니다. 그 후에는 선형 불안정한 시스템에 대한 비선형 수치 시뮬레이션을 수행하여, 처음에는 불안정에 결국 진화해서 어떤 형태로 귀결되는가를 연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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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의 초창기 시절에 대해 여쭤 보려고 하는데요, 어떻게 회장을 맡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 당시엔 YAM이라는 건 없었습니다. 그런데 중국에서 별 생성에 관한 여름학교가 있었는데, 여러 대학교의 천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들과 같이 가게 되었어요. 논문으로만 본 유명한 사람들의 강연을 듣고 내가 연구했던 것들을 발표할 시간도 가졌어요. 또 연사들이 학생들과 대화하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외국에 나가 영어로 발표하고 굉장히 유명한 천문학자들과 이야기하면서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유명한 천문학자들도 다 인간이구나 하는 사실 또한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프로적인 면모뿐만 인간적인 면도 볼 수 있었죠. 그 여름학교가 있었던 다음 해에 일본에서도 Young Astronomers Meeting이 있었어요. 일본 학생들이 미팅에 한국 학생들을 초청해 준 덕분에 학생들을 모아서 (15명 정도) 미팅에 참여했어요. 니가타에서 열린 미팅에서 일본 학생들이 프로그램을 어떤 식으로 구성하고 운영하는지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일본 학생들은 스스로 미팅을 잘 운영하고 있더군요. 학생들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필요한 돈은 시니어 천문학자들에게 지원을 받는 식이었습니다. 그 미팅에서는 한국-일본 특별 세션이 있었고 그때 한국 학생들도 학술 발표를 했었습니다. 그다음에 일본 국립 천문대 본부가 있는 도쿄 미타카를 방문했어요. 그곳에서 현재 나고야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이누츠카 상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 후 내가 영국에 있을 때는 우리 집에 와서 저녁도 먹고요, 계속해서 친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45m 전파 망원경이 있는 노베야마 천문대를 방문하였습니다. 천문대 견학을 하면서 기숙사에 묵었는데 노마루라는 일본 친구와 같이 목욕했던 기억이 납니다. 일본을 다녀온 후 일본 YAM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일본은 YAM의 역사가 굉장히 길고, 많은 천문학자가 학생 시절에 YAM을 거쳤기 때문에 YAM의 활동에 많은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일본에서 열린 미팅에 참석한 다음 해, 부산에서 천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들의 모임을 했습니다. 그 모임에서 한국 YAM을 조직하게 되었고 제가 초대 회장으로 선출이 되었습니다.
부산 모임 이후, 한국에서 어떤 식의 활동이 있었나요?
먼저 YAM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각 대학별로 대표를 두었습니다. 그리고 ‘하늘 사랑’이라는 YAM의 소식지도 발간하기로 하였습니다. 회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리가 학술 프로그램을 만들고, 연구 내용을 발표하였습니다. 모임의 하이라이트는 저녁 식사 시간의 교류였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YAM 학술대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했습니다. 그리고 일본 대학원생을 국내로 초청하여 한국-일본 YAM 미팅도 개최하였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국내 YAM 활동이 수년간 지속하였다가 중간에 끊겼다고 하더라고요. 끊겼다가 다시 또 시작하고…
그 시절의 회원분들이랑도 계속 친분을 유지하고 계시나요?
KASI의 문홍규 연구원, 충남대 이수창 교수님께서 세 번째 회장 네 번째 회장을 맡은 것 같았고 그다음에 이화여대의 박종애 선배님도 굉장히 열심히 YAM 활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경희대 계시는 최윤영 교수님도 나중에 YAM 회장을 했을 것 같은데, 상당히 활발했습니다. 그리고 경희대 진호 교수님도 저와 같이 첫 번째 하늘 사랑을 편집하셨죠.
회장을 하실 때, 연구활동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대학원 생활에 도움이 됐다거나, 아니면 도움이 안 되었다거나…
모여서 학술 얘기를 하니까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친목이 더 중요했었죠. 다른 학교 학생들이 무슨 주제를 연구하는 잘 몰랐었는데, YAM을 통해서 알게 되었으니까요. 학생들만의 학술 행사를 하니까 질문도 자유롭고 대답도 부담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내 연구에 대해서는 많은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내가 연구하는 분야에 대해서 깊은 의견을 나눌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렇지만 그 당시 학생들과 연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혹시 YAM 활동에 대해 교수님들이 반대하시진 않으셨나요?
제 지도를 맡고 계시는 홍승수 교수님께 YAM 활동을 말씀드렸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몇몇 교수님들도 한국에서도 YAM이 만들어졌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교수님들은 특별하게 YAM 활동에 대해 지도를 해 주시거나 반대하시진 않았습니다.
하늘 사랑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왜 하늘 사랑을 출간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제 세대보다 윗세대는 글로 남기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요즘은 소셜 네트워크가 발달하여 정제된 장문의 글은 거의 안 쓰는 것 같더군요) 내가 하늘사랑을 만들자고 했죠. YAM의 역사와 활동을 글로써 남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창간호에는 하늘 사랑의 창간 이유, YAM의 학술 대회 프로그램, 그리고 기타 소식들을 실었습니다. 진호 교수님이 편집을 위해 서울대에 왔었어요. 그런데 그땐 연구실에 개인용 컴퓨터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과 사무실에 하나, 전체 대학원에 한두 대만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제 기억에는 편집 작업을 위해 일과 시간이 끝난 시점부터 과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를 사용했습니다. 진호 교수님과 늦게까지 편집을 마치고 별을 보면서 뿌듯하게 나온 기억이… (웃음)
저희가 4권까지 가지고 있거든요. 그 이후에 끊긴 것 같은데, 다시 출간된다는 소식을 들으셨을 때 기분이 어떠신가요?
부산에서 YAM 모임에 강연을 해달라고 해서 그때는 강의를 준비하면서 제가 만든 하늘 사랑창간호를 찾아본 적이 있었습니다. 강연에 참여한 대학원생들에게 한국 YAM이 만들어질 당시의 상황을 상기시켜 주기 위해서였죠. 2, 3, 4권은 무슨 내용이 있는지 잘 기억이 안 납니다. 가지고 있으면 보고 싶습니다. 하늘 사랑의 옛 전통을 이어 계속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연구를 그만두고 싶으신 적이 있으셨나요?
거꾸로인데, 아까 매니지먼트 업무를 하고 있다고 했잖아요. KASI에는 두 가지 미션이 있어요. 하나는 연구, 다른 하나는, 나이가 많아지면, 매니지먼트를 해야 돼요. 저는 후자의 일을 8년 전부터 했는데 사실 연구를 더 많이 하고 싶어요. 아무튼 연구를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거의 가져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연구에 시간을 더 할애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습니다.
한 학생으로부터 대학원생이 결혼을 어떻게 하냐는 질문이 있었는데, 하늘 사랑 소식지를 읽다가 결혼하셨다는 소식을 읽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좀 결혼을 빨리했는데, 캠퍼스 커플이고요. 그런데 상황에 따라서 빨리해도 좋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을 갖고 살지만… (웃음) 서울대 조교도 하고, 운 좋게도 여기 연구소에 빨리 와서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젊었을 때 열정을 가지고 좋아하는 사람한테 대시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남자들은 특히. 여자들도 마찬가지로 좋아하는 사람은 놓치지 않도록 적극적인 표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열애 한 번씩은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 않으면 아쉬움이 남고, 미련이 남고 그러니까. 공부한다고 너무 앉아 있기만 하면 안 됩니다. 학생들이 좀 돌아다녀야 돼요. 일본에 Fujitsu 회사에서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있는 엔지니어가 강연에서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요즘에는 스마트 밴드로 사람의 맥박수 또는 수면 시간 등을 측정하고 있는데, 그 엔지니어는 이런 기기를 오래전부터 차고 다녔다고 해요. 그리고 밴드로부터 얻은 데이터와 사람의 행복지수에 관한 연구를 했대요. 그래서 무슨 결과가 나왔냐면, ‘많이 움직이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 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면 안 되고 연구하는 시간 외에는 연애하러 돌아다녀야 합니다. (웃음)
연구 분야를 바꾸기를 고민하는 학생에게 조언해 주세요.
분야를 바꿀 때는 주의를 기울여서 바꿔야 하는데, 분야를 바꾸기에 가장 좋은 시점은 자기가 정규직을 얻었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금은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일하기도 힘들고, 더 힘든 것은 정규직을 얻는 것입니다. 워낙 경쟁이 심하니까요. 분야를 바꾸면 처음부터 공부해야 하니까 논문 생산력이 뚝 떨어져요. 하고 싶은 분야를 연구하는 것은 좋지만, 논문 생산력이 떨어지면 나중에 직장을 잡기 힘들어집니다. 제일 추천 하는 것은 정규직을 찾았을 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대신에 박사 후 연구원으로 바뀌었을 때 해오던 분야의 연구 비율을 천천히 줄이고 새로운 지도 교수님과 새 분야를 넓혀가면 될 것 같습니다. 천문학자가 분야를 넓히는 게 상당히 중요한데, 편협하게 하면 궁극적으로 좋은 일을 못 하게 됩니다. 넓게 보고 무슨 일이 좋은 일인가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시간이 제한되어 있어요. 할 수 있는 능력도 제한되어 있고. 그래서 가장 좋고 빨리할 수 있는 주제를 찾아서 해야 돼요.
석사에서 박사 넘어갈 때 연구 주제를 바꾸길 고민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내가 볼 때는 석사에서 박사로 바뀔 때는 바꿔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박사과정도 어찌 보면 그 분야를 공부하는 과정 중의 일환이니까. 그리고 석사는 아직은 그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잖아요. 그래서 석사에서 박사로 갈 때 바꾸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요. 박사는 4년 정도의 시간을 들여서 그 분야의 새로운 업적을 남기고 논문을 쓰는 것이잖아요.
마지막으로 회장에서 지금은 시니어 천문학자가 되셨는데 현재 젊은 천문학자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 한마디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가 다시 대학원생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질문과 비슷한 것 같은데, 일단 자기가 하는 연구를 열심히 해야죠. 공부하겠다고 한 사람들이니까, 그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려고 노력을 해야죠. 전문가가 되지 않으면 학자로서 살아남을 수 없어요. 적당히 2, 3등 하면서 놀면 안 돼요. 그 분야에서 제일 잘하는 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부단히 노력해야죠. 그게 첫 번째로 하고 싶은 말이고, 두 번째는 연애. 젊었을 때가 후회하지 않을 열애를 해 보기를 권합니다. 공부 아니면 연애 두 가지만 하면 돼요. 두 가지 다 해야죠. 하나만 쫓으면 미련이 남고. 두 가지 다 하기 힘들지만, 시간을 잘 제어해서 한 곳에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도록 해야죠. 박사나 석사과정에 연애 초창기에는 치우침이 있을지라도 시간 갈수록 균형을 맞춰서 두 가지 다 열심히 하면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