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연구요원 준비하기
나는 이제 전문연구요원 편입 1년을 채운 박사과정생이다. 이 글에서는 전문연구요원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그러나 권위 없는 나의 조언은 참고로만 삼기 바란다. 병역을 해결하는 것은 너무너무 중요한 일이니까. 전문연구요원과 관련 없으며, 전문연구요원이 무슨 제도인지 궁금하지만 귀찮아서 아직 알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도 좋다.
아주 짧게 이야기하면 전문연구요원제도는 현역병으로 입대하는 대신에 국내 이공계 박사학위 과정을 밟으며 36개월간 연구하는 것으로 병역을 대체하는 제도다. 복무 시작은 박사과정 수료 후 36개월이라 남들보다 박사 졸업 시기가 조금 늦어지거나, 졸업 후에 박사 학위자로서 조금 더 복무하게 되는 약간의 기회비용이 있다.
전문연구요원의 복무 형태는 크게 세 갈래로 나누어진다.
1) 대학에서 원래 소속된 연구실에서 박사과정 연구를 계속하거나 (이하 박사과정)
2) 대학이나 국책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일하거나 (이하 정부 연구소)
3) 혹은 산업체에서 근무할 수도 있다. (이하 기업 연구소)
기업 연구소 전문연구요원은 낮은 비용으로 고급 인력을 사용하고픈 중소기업에서 많이 찾는다. 물론 실용적인 분야의 전공에 해당하고 천문학도와는 큰 관련 없는 이야기다. 박사과정 전문연은 지역별로 TO가 정해져 있으며 지원자 중 성적순으로 선발한다. 석사성적 50% + TEPS 성적 50%이며 TEPS 500 이상, 한국사 능력검정시험 3급 이상이 신청 자격이다. 비수도권은 대체로 정원 미달이지만 수도권은 합격선이 날로 올라가서 2013년 전기에 대학원 학점 95점 정도, TEPS 650 정도였던 합격선이 지금은 학점 95에 TEPS가 800에 육박한다고 한다. 대학원 학점은 사실상 변별력이 없어서 영어 성적만 끝없이 올라간 결과로, '전문텝스요원' 선발이라는 말도 나온다. 또는 국토 발전이 얼마나 불균형한지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정부 연구소 전문연의 경우는 대학에 부설 연구소가 있으면 감사히도 박사과정 전문연과 다르지 않은 조건으로 복무할 수 있으며, 기관이 자체적으로 선발하기 때문에 ‘전문텝스요원’이 아니어도 충분히 기회가 있다. 천문연구원에서도 매년 2회 전문연구요원을 뽑는다. TO는 기관마다 정해져 있는데 그리 많지 않으며 아쉽게도 일부 대학의 일부 단과대에만 연구소가 운영된다. 전문연구요원을 선발할 수 있는 업체와 연구소의 목록은 매년 갱신되고, 기관마다 선발 인원도 매년 바뀐다. 따라서 정부 연구소 전문연구요원을 노린다면 병무청의 공지를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아주 짧게 이야기하면 전문연구요원제도는 현역병으로 입대하는 대신에 국내 이공계 박사학위 과정을 밟으며 36개월간 연구하는 것으로 병역을 대체하는 제도다. 복무 시작은 박사과정 수료 후 36개월이라 남들보다 박사 졸업 시기가 조금 늦어지거나, 졸업 후에 박사 학위자로서 조금 더 복무하게 되는 약간의 기회비용이 있다.
전문연구요원의 복무 형태는 크게 세 갈래로 나누어진다.
1) 대학에서 원래 소속된 연구실에서 박사과정 연구를 계속하거나 (이하 박사과정)
2) 대학이나 국책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일하거나 (이하 정부 연구소)
3) 혹은 산업체에서 근무할 수도 있다. (이하 기업 연구소)
기업 연구소 전문연구요원은 낮은 비용으로 고급 인력을 사용하고픈 중소기업에서 많이 찾는다. 물론 실용적인 분야의 전공에 해당하고 천문학도와는 큰 관련 없는 이야기다. 박사과정 전문연은 지역별로 TO가 정해져 있으며 지원자 중 성적순으로 선발한다. 석사성적 50% + TEPS 성적 50%이며 TEPS 500 이상, 한국사 능력검정시험 3급 이상이 신청 자격이다. 비수도권은 대체로 정원 미달이지만 수도권은 합격선이 날로 올라가서 2013년 전기에 대학원 학점 95점 정도, TEPS 650 정도였던 합격선이 지금은 학점 95에 TEPS가 800에 육박한다고 한다. 대학원 학점은 사실상 변별력이 없어서 영어 성적만 끝없이 올라간 결과로, '전문텝스요원' 선발이라는 말도 나온다. 또는 국토 발전이 얼마나 불균형한지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정부 연구소 전문연의 경우는 대학에 부설 연구소가 있으면 감사히도 박사과정 전문연과 다르지 않은 조건으로 복무할 수 있으며, 기관이 자체적으로 선발하기 때문에 ‘전문텝스요원’이 아니어도 충분히 기회가 있다. 천문연구원에서도 매년 2회 전문연구요원을 뽑는다. TO는 기관마다 정해져 있는데 그리 많지 않으며 아쉽게도 일부 대학의 일부 단과대에만 연구소가 운영된다. 전문연구요원을 선발할 수 있는 업체와 연구소의 목록은 매년 갱신되고, 기관마다 선발 인원도 매년 바뀐다. 따라서 정부 연구소 전문연구요원을 노린다면 병무청의 공지를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전문연구요원 전체 인원도 매년 조금씩 바뀌는데, 2018년에는 박사과정 전문연 1,000명, 정부 연구소 전문연 300명, 기업 연구소 전문연 1200명으로 예상된다. 이것은 전국의 모든 이공계 및 의학 계열 정원이 포함된 숫자다.
선발시험
영어 실력은 천차만별이라 감히 조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TEPS는 책만 파는 전통적인 공부방식으로도 성적을 올리기가 쉽다. 스피킹과 라이팅이 없어서 대학원생이 준비하기에 TOEFL보다는 훨씬 편하다. 의외로 여기저기에 필요해서 방학 때는 학교마다 스터디그룹도 있을 것이니 활용하면 좋겠다. 한국사 시험은 큰별쌤만 믿고 가자. 평생 국사 성적이 가장 낮았던 나도 3주만 바짝 하니까 통과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전문연구요원에 합격한 뒤, 본격적인 복무는 수개월 이후인 편입일부터 시작된다. 박사과정 전문연구원으로의 편입은 학기와 함께 시작하며 한 달 전 부터 몇 가지 서류가 오가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생활
전문연구요원의 삶을 대략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나는 박사과정 전문연이지만 정부 연구소 전문연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고 본다. 기본적으로 9시 출근 6시 퇴근이며, 출퇴근 시간을 기록한다. 수기로 기록을 남기는 대신 서울대에서는 정맥 인식을 한다고 들었다. 연세대도 안면 인식 시스템을 도입할 것이라고 몇 달 전부터 공지가 왔으나 아직은 소식이 없다. 아무래도 자유로운 대학원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출퇴근 시간을 칼같이 지키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현역병 입대에 비해 커다란 혜택인 만큼 성실하게 복무해서 오랜 기간 제도가 유지되도록 해야겠다. (라고 다짐해본다)
연구활동은 남들과 다르지 않아서 연구 과제를 수행하며 동시에 박사 졸업 준비를 한다. 근로시간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퇴근 후에 다른 활동(영리활동 포함)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역시 연구만 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예를 들어서 오후 5시에 조퇴하고 과외수업하면 문제가 크게 된다. 5시에 조퇴하고 과외를 안 하면 조금 문제 된다. 휴가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적용되지만, 박사과정이라면 어차피 근로기준법만큼의 휴가를 누리기가 쉽지 않다. 하루 8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1년 동안 지각/조퇴 시간이 8일 근무시간 = 64시간을 넘지 않으면 휴가에서 깎이는 것으로 끝이다. 휴가를 다 쓰고 지각/조퇴하거나 8일 이상 지각/조퇴하면 복무 기간이 연장된다. 한편, 8일 이상 무단결근하면 군대로 끌려간다.
해외출장
대학원생은 국내외 출장이 잦은데, 다행히 거의 제약이 없다. 국내 7일 이상 출장 및 국외 출장은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해서 귀찮지만, 승인은 곧잘 해준다. 복무 기간의 2/3를 출장으로 보내도 문제가 안 되고, 한국에 적을 둔 채로 외국 기관에서 꽤 오래 연구할 수도 있다. 대신 해외 출장을 갔다가 허가받은 날보다 하루라도 늦게 돌아오면 큰일 나니 조심해야 한다.
미필 남자로 25세가 넘으면 복수 여권을 발급받을 수 없고 해외 출장마다 단수여권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여권을 발급 받을 때마다 병무청에서 해외여행허가를 받아야 하고, 이전 여권은 반드시 구청에서 폐기해야 하며, 이전 여권을 들고 구청에 찾아다가 보니 눈치가 보여서 같은 사진을 다시 쓰기도 어렵다. 전문연에 합격한 후에는 이 문제가 사라져서 5년짜리 복수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다! 이것이 피부로 느끼는 가장 큰 변화였고, 선발에 합격한 뒤 주위에서 들은 축하 인사도 주로 “이제 복수여권 만들 수 있겠네!” 였다.
전문연구요원의 해외여행 승인 절차는 약간 복잡해서 나는 한 두 번 만에 체득하지 못했다. 학교에서 승인받은 서류를 바탕으로 병무청에서 다시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뒷부분을 잊어버린 채 인천공항으로 간 적이 있다. 꽤 일찍 공항에 도착해서 여유롭게 체크인을 하려다 웬걸, 체크인이 거부되었다. 항공사 직원이 이리저리 알아보더니 병무청의 승인을 받아오라는 것이었다. 다행히 인천공항에는 병무민원센터가 있어서 급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위치는 출국 층 정 중앙의 뒤편이다. 민원센터에서 출국을 허가해주기 위해서는 학교장 이름의 여행허가추천서 인쇄본이 필요하다. 인쇄도 민원센터에서 해주면 좋으련만, 몇 가지 이유를 대며 직접 인쇄해 오란다. 인천공항 카페베네에서 서류를 출력해야 했다. (인천공항에서 프린트가 가능한 곳은 카페베네가 유일한 것으로 안다. 위치를 알아두면 도움이 되겠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곳에 있다) 땀이 나게 뛰어다녀서 대략 30분 만에 출국 허가를 받을 수 있었고, 나는 마지막으로 체크인했다. 공항에 올 때는 뽀송뽀송했는데, 결국은 축축하게 젖은 티셔츠를 입고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민원센터에서는 우리의 사정을 잘 이해해서 쉽게 도와주지만, 항공사 직원들에게는 낯선 사례인 것 같다. 출국 허가를 제대로 받고 가도 서류를 확인하면서 갸우뚱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연구요원 여권 앞면엔 안내 출입국 관련 안내 스티커가 붙어있는데, 가끔 외국 출입국 심사대에서 “당신 뭔데 여권에 이상한 스티커가 붙어있느냐?”고 취조당하기도 한다. 영어로 얼른 설명이 나오기 어려우니 연습이 필요하다.
내가 전문연구요원에 편입한 것은 2015년 9월 1일이다. 마침 2015년 후반기에 출장이 있었는데, 9월 1일에는 한국에 있어야 한다고 해서 9월 2일 출국을 계획했다. 그런데 출장과 편입을 준비하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전문연구요원이 아닌 상태로 받는 출국 허가와 전문연구요원이 받는 출국 허가의 과정이 다른 것이었다. 전문연구요원이 아닌 상태로 출국 허가를 내어주면서 당시 병무청에서는 편입 이후에 다시 허가를 받아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허가에만 며칠이 더 필요하다. 더 큰 문제는 복무 시작을 확인하는 행정절차가 실제로는 9월 1일이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편입 시작하는 날에는 한국에 있어야 하는데, 만약 9월 1일에 편입이 완료되지 않으면 6주간의 출장을 끝내고 돌아온 뒤부터 복무 날짜가 계산될 것이다. 학교 담당자가 꽤 심각하게 이야기를 해서 걱정을 많이 했다. 가슴 졸이며 기다린 편입 당일, 다행히 나는 아무 문제 없이 편입 절차를 마쳤고 다음 날 무사히 출장을 떠날 수 있었다. 아마도 학생과 마주하는 담당자가 최종 결정권자가 아니라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서 알려주었던 것이었나 보다. 그러나 가능하면 편입 후 첫 해외 출장은 한 달쯤 뒤로 잡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롭겠다.
교육소집
전문연구요원도 최소한의 훈련을 받는다. 교육소집이라고 불리는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이다. 현역병이 자대 배치 전에 훈련소에 가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원칙적으로는 편입 후 6개월 이내에, 자리가 없으면 더 늦은 어느 날 병무청에서 불쑥 연락이 온다. 한 달 후에 훈련받으러 오라는 식이다. 다행히 연구로 바쁜 시기에 연락을 받으면 안 바빠질 때까지 원하는 기간만큼 연기 신청할 수 있고, 쉽게 승인된다. 나 역시 한차례 연기해서 아직 훈련소에 다녀오지 않았다. 소문에 따르면 현역병의 훈련소 생활보다는 훨씬 수월하다고 한다. 주로 전문연구요원끼리 모이거나 사회복무요원과 함께 훈련받아서 훈련의 강도가 낮다. 훈련을 시키는 사람의 처지에서도 그저 지나가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듯싶다. 훈련보다는 지겨움, 열악한 생활관, 식사, 아재들의 재미없음이 더 큰 문제라고 한다. 대학원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운동 좀 하나 싶었는데, 실상은 나올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감기로 골골거리다가 끝났다는 증언도 있었다. 어쨌거나 합법적으로 연구를 안 해도 되는 4주라니, 의미가 적지 않다.
전문연구요원 폐지?
지난 5월 16일 국방부에서 전문연구요원 및 산업기능요원 제도를 폐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2023년까지 점진적으로 인원을 줄이는데, 박사과정 전문연구요원은 당장 2018년에 폐지하겠다는 것이었다. 현역 복무의 경우 대학교 1, 2학년이 가장 선호되는 시기인데, 전문연구요원을 바라보며 아직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수많은 대학생들과 대학원생들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이야기다. 이대로라면 학부 4학년이나 심지어는 석사과정 중에 현역 입대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당연히, 그리고 다행히 각계각층에서 반대 목소리가 거셌다. 이공계 대학들이 순식간에 의견을 모아 반대 성명을 냈고, 산업계에서도 반대가 심했다. 중소기업의 처지에서는 고급인재의 주요 공급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결국, 며칠 안 가 국방부는 아직 검토 단계이며 의견 수렴과정이라고 슬쩍 물러섰다. 말도 안 되게 부족한 유예기간으로 미루어 보아 정말 의견수렴 과정이었던 것이라 믿는다. 믿고 싶다. 전문연구요원 폐지는 다른 행정부처들과의 협의가 필요하며, 관련 법도 개정해야 하는 사안이다. 인원배정은 병무청의 권한이라 감원은 가능하지만, 폐지는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전문연구요원이 폐지되면 당장 대부분의 남학생이 유학을 1순위로 준비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의 대학들이 동등한 조건에서 해외 대학들과 경쟁할 수 있어야겠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전문연구요원이 폐지되면 후배가 모자랄까 봐 걱정 되는 게 현실이다. 부디 좋은 제도가 오래 유지되기를 바란다.
선발시험
영어 실력은 천차만별이라 감히 조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TEPS는 책만 파는 전통적인 공부방식으로도 성적을 올리기가 쉽다. 스피킹과 라이팅이 없어서 대학원생이 준비하기에 TOEFL보다는 훨씬 편하다. 의외로 여기저기에 필요해서 방학 때는 학교마다 스터디그룹도 있을 것이니 활용하면 좋겠다. 한국사 시험은 큰별쌤만 믿고 가자. 평생 국사 성적이 가장 낮았던 나도 3주만 바짝 하니까 통과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전문연구요원에 합격한 뒤, 본격적인 복무는 수개월 이후인 편입일부터 시작된다. 박사과정 전문연구원으로의 편입은 학기와 함께 시작하며 한 달 전 부터 몇 가지 서류가 오가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생활
전문연구요원의 삶을 대략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나는 박사과정 전문연이지만 정부 연구소 전문연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고 본다. 기본적으로 9시 출근 6시 퇴근이며, 출퇴근 시간을 기록한다. 수기로 기록을 남기는 대신 서울대에서는 정맥 인식을 한다고 들었다. 연세대도 안면 인식 시스템을 도입할 것이라고 몇 달 전부터 공지가 왔으나 아직은 소식이 없다. 아무래도 자유로운 대학원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출퇴근 시간을 칼같이 지키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현역병 입대에 비해 커다란 혜택인 만큼 성실하게 복무해서 오랜 기간 제도가 유지되도록 해야겠다. (라고 다짐해본다)
연구활동은 남들과 다르지 않아서 연구 과제를 수행하며 동시에 박사 졸업 준비를 한다. 근로시간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퇴근 후에 다른 활동(영리활동 포함)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역시 연구만 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예를 들어서 오후 5시에 조퇴하고 과외수업하면 문제가 크게 된다. 5시에 조퇴하고 과외를 안 하면 조금 문제 된다. 휴가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적용되지만, 박사과정이라면 어차피 근로기준법만큼의 휴가를 누리기가 쉽지 않다. 하루 8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1년 동안 지각/조퇴 시간이 8일 근무시간 = 64시간을 넘지 않으면 휴가에서 깎이는 것으로 끝이다. 휴가를 다 쓰고 지각/조퇴하거나 8일 이상 지각/조퇴하면 복무 기간이 연장된다. 한편, 8일 이상 무단결근하면 군대로 끌려간다.
해외출장
대학원생은 국내외 출장이 잦은데, 다행히 거의 제약이 없다. 국내 7일 이상 출장 및 국외 출장은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해서 귀찮지만, 승인은 곧잘 해준다. 복무 기간의 2/3를 출장으로 보내도 문제가 안 되고, 한국에 적을 둔 채로 외국 기관에서 꽤 오래 연구할 수도 있다. 대신 해외 출장을 갔다가 허가받은 날보다 하루라도 늦게 돌아오면 큰일 나니 조심해야 한다.
미필 남자로 25세가 넘으면 복수 여권을 발급받을 수 없고 해외 출장마다 단수여권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여권을 발급 받을 때마다 병무청에서 해외여행허가를 받아야 하고, 이전 여권은 반드시 구청에서 폐기해야 하며, 이전 여권을 들고 구청에 찾아다가 보니 눈치가 보여서 같은 사진을 다시 쓰기도 어렵다. 전문연에 합격한 후에는 이 문제가 사라져서 5년짜리 복수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다! 이것이 피부로 느끼는 가장 큰 변화였고, 선발에 합격한 뒤 주위에서 들은 축하 인사도 주로 “이제 복수여권 만들 수 있겠네!” 였다.
전문연구요원의 해외여행 승인 절차는 약간 복잡해서 나는 한 두 번 만에 체득하지 못했다. 학교에서 승인받은 서류를 바탕으로 병무청에서 다시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뒷부분을 잊어버린 채 인천공항으로 간 적이 있다. 꽤 일찍 공항에 도착해서 여유롭게 체크인을 하려다 웬걸, 체크인이 거부되었다. 항공사 직원이 이리저리 알아보더니 병무청의 승인을 받아오라는 것이었다. 다행히 인천공항에는 병무민원센터가 있어서 급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위치는 출국 층 정 중앙의 뒤편이다. 민원센터에서 출국을 허가해주기 위해서는 학교장 이름의 여행허가추천서 인쇄본이 필요하다. 인쇄도 민원센터에서 해주면 좋으련만, 몇 가지 이유를 대며 직접 인쇄해 오란다. 인천공항 카페베네에서 서류를 출력해야 했다. (인천공항에서 프린트가 가능한 곳은 카페베네가 유일한 것으로 안다. 위치를 알아두면 도움이 되겠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곳에 있다) 땀이 나게 뛰어다녀서 대략 30분 만에 출국 허가를 받을 수 있었고, 나는 마지막으로 체크인했다. 공항에 올 때는 뽀송뽀송했는데, 결국은 축축하게 젖은 티셔츠를 입고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민원센터에서는 우리의 사정을 잘 이해해서 쉽게 도와주지만, 항공사 직원들에게는 낯선 사례인 것 같다. 출국 허가를 제대로 받고 가도 서류를 확인하면서 갸우뚱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연구요원 여권 앞면엔 안내 출입국 관련 안내 스티커가 붙어있는데, 가끔 외국 출입국 심사대에서 “당신 뭔데 여권에 이상한 스티커가 붙어있느냐?”고 취조당하기도 한다. 영어로 얼른 설명이 나오기 어려우니 연습이 필요하다.
내가 전문연구요원에 편입한 것은 2015년 9월 1일이다. 마침 2015년 후반기에 출장이 있었는데, 9월 1일에는 한국에 있어야 한다고 해서 9월 2일 출국을 계획했다. 그런데 출장과 편입을 준비하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전문연구요원이 아닌 상태로 받는 출국 허가와 전문연구요원이 받는 출국 허가의 과정이 다른 것이었다. 전문연구요원이 아닌 상태로 출국 허가를 내어주면서 당시 병무청에서는 편입 이후에 다시 허가를 받아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허가에만 며칠이 더 필요하다. 더 큰 문제는 복무 시작을 확인하는 행정절차가 실제로는 9월 1일이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편입 시작하는 날에는 한국에 있어야 하는데, 만약 9월 1일에 편입이 완료되지 않으면 6주간의 출장을 끝내고 돌아온 뒤부터 복무 날짜가 계산될 것이다. 학교 담당자가 꽤 심각하게 이야기를 해서 걱정을 많이 했다. 가슴 졸이며 기다린 편입 당일, 다행히 나는 아무 문제 없이 편입 절차를 마쳤고 다음 날 무사히 출장을 떠날 수 있었다. 아마도 학생과 마주하는 담당자가 최종 결정권자가 아니라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서 알려주었던 것이었나 보다. 그러나 가능하면 편입 후 첫 해외 출장은 한 달쯤 뒤로 잡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롭겠다.
교육소집
전문연구요원도 최소한의 훈련을 받는다. 교육소집이라고 불리는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이다. 현역병이 자대 배치 전에 훈련소에 가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원칙적으로는 편입 후 6개월 이내에, 자리가 없으면 더 늦은 어느 날 병무청에서 불쑥 연락이 온다. 한 달 후에 훈련받으러 오라는 식이다. 다행히 연구로 바쁜 시기에 연락을 받으면 안 바빠질 때까지 원하는 기간만큼 연기 신청할 수 있고, 쉽게 승인된다. 나 역시 한차례 연기해서 아직 훈련소에 다녀오지 않았다. 소문에 따르면 현역병의 훈련소 생활보다는 훨씬 수월하다고 한다. 주로 전문연구요원끼리 모이거나 사회복무요원과 함께 훈련받아서 훈련의 강도가 낮다. 훈련을 시키는 사람의 처지에서도 그저 지나가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듯싶다. 훈련보다는 지겨움, 열악한 생활관, 식사, 아재들의 재미없음이 더 큰 문제라고 한다. 대학원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운동 좀 하나 싶었는데, 실상은 나올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감기로 골골거리다가 끝났다는 증언도 있었다. 어쨌거나 합법적으로 연구를 안 해도 되는 4주라니, 의미가 적지 않다.
전문연구요원 폐지?
지난 5월 16일 국방부에서 전문연구요원 및 산업기능요원 제도를 폐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2023년까지 점진적으로 인원을 줄이는데, 박사과정 전문연구요원은 당장 2018년에 폐지하겠다는 것이었다. 현역 복무의 경우 대학교 1, 2학년이 가장 선호되는 시기인데, 전문연구요원을 바라보며 아직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수많은 대학생들과 대학원생들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이야기다. 이대로라면 학부 4학년이나 심지어는 석사과정 중에 현역 입대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당연히, 그리고 다행히 각계각층에서 반대 목소리가 거셌다. 이공계 대학들이 순식간에 의견을 모아 반대 성명을 냈고, 산업계에서도 반대가 심했다. 중소기업의 처지에서는 고급인재의 주요 공급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결국, 며칠 안 가 국방부는 아직 검토 단계이며 의견 수렴과정이라고 슬쩍 물러섰다. 말도 안 되게 부족한 유예기간으로 미루어 보아 정말 의견수렴 과정이었던 것이라 믿는다. 믿고 싶다. 전문연구요원 폐지는 다른 행정부처들과의 협의가 필요하며, 관련 법도 개정해야 하는 사안이다. 인원배정은 병무청의 권한이라 감원은 가능하지만, 폐지는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전문연구요원이 폐지되면 당장 대부분의 남학생이 유학을 1순위로 준비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의 대학들이 동등한 조건에서 해외 대학들과 경쟁할 수 있어야겠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전문연구요원이 폐지되면 후배가 모자랄까 봐 걱정 되는 게 현실이다. 부디 좋은 제도가 오래 유지되기를 바란다.
최호승 (연세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