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 구름이 쌍성계를 이루기까지
후배로부터 ‘대학원생과 결혼생활과 육아’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은 지 거의 한 달이 다 되었다. 대학원생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그 사이에 해외 출장도 있었고 여러 가지 해야 할 일들이 많아 계속 미루다가 곧 전체 마감이 다가온다기에 다급하게 워드를 켰다. 솔직히 고백하면, 원고를 계속 미루게 된 또 다른 이유는 글의 방향을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주위에 육아로 고민하는 분들이 많은데 내가 과연 이런 주제로 글을 쓸 자격이 있는지 고민도 됐다. 그래서 나는 거창한 결론을 내는 글을 쓰기보다는 나의 대학원 생활과 결혼, 그리고 육아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는 것으로 마음먹었다.
나는 박사과정을 시작하던 2010년에 아내와 결혼을 했다. 오랜 연애를 한 끝에 결혼에 성공했기 때문인지 몰라도 우리 신혼 생활은 매우 순탄했다. 결혼하기 전 아내가 직장을 그만뒀기 때문에 집안일을 대부분 맡아서 해줬고, 덕분에 나에게는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물론 초반엔 불편한 점도 있었다. 결혼 전에는 학교 담벼락 건너편에 혼자 살며, 집과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마구 섞여 있는 불규칙한 생활을 즐기던 나로서는, 타인과 함께 한집에서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는 점이 몸에 잘 맞지 않았다. 게다가 아내는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이라서 내가 아침에 자는 걸 보면 고개를 저으며 화를 내기 일쑤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마치 가스 구름이 정역학적 평형을 찾아가는 것처럼 둘이 함께 사는 삶에도 균형이 찾아왔다. 그리고 평형을 찾은 별이 마침내 스스로 빛을 내는 것처럼, 우리의 작은 신혼집에서도 드디어 빛이 나는 듯했다.
지도 교수님과 결혼 생활에 관해 이야기하던 중에 이런 대화가 오간 적이 있었다. “너는 신혼이 언제까지라고 생각하니?” “글쎄요. 한 3년 정도일까요?” “그건 첫 아이 임신 사실을 아는 순간까지야.” 우리 부부도 신혼의 꿈같은 시간을 보내다가, 약 2년 만에 그 꿈에서 깨어나야만 했다. 2012년 4월 아내는 임신했고, 그해 겨울 아이가 세상으로 나왔다. 아주 조그마한 딸아이였다. 처음 아이가 나오던 모습을 보며 나는 한동안 ‘자색고구마’라고 불렀다. 마침 그다음 해에 미국에 있는 연구소로 1년간 방문을 계획했던 터라 준비할 게 많았는데, 아이까지 태어났으니 여러 가지로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더 많아져 마음이 분주해졌다.
아이가 나오고 첫 2주간은 여전히 평화로웠다. 그 기간 아내는 산부인과에 딸린 산후조리원에 머물면서 회복 기간을 가졌고, 1월 초에 우리는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집에서 떠날 때는 둘이었는데, 셋이서 돌아오다니. 신기한 느낌이 드는 것도 잠시뿐, 곧 우리는 실전이 펼쳐진 것을 느꼈다. 임신 기간에 우리는 육아 관련 책도 읽고, 블로그에 올라온 경험담 등을 읽으며 마음의 준비를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지만, 육아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렇게 우리에게 아이가 찾아온 순간, 우리 부부가 힘겹게 찾았던 정역학적 평형상태는 아쉽게도 깨져야만 했다. 아이를 기르는 건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 잠을 못 자고 짜증을 부릴 때나 아파서 열이 날 때나 아이가 겪는 모든 순간마다 신경이 곤두섰다. 이런 아이를 아내와 내가 오롯이 돌보다 보니 우리는 수면 부족에 신경과민에 시달렸지만, 아이가 웃거나 애교를 부리는 걸 보면서 잠깐씩 행복을 맛볼 수 있었다. 낮 동안 독박 육아를 하는 아내를 돕느라 연구할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해졌지만 그건 감당해야 할 부분이었다. 연구한답시고 육아를 소홀히 했다가는 아내가 산후우울증에 걸릴 것이 뻔한 일이었다 (이미 걸렸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주 중에 출근한 시간에는 가능하면 최대한 집중하고, 돌아가면 육아와 집안일을 도왔다.
그리고 그때부터 주말에도 대부분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는 말도 하고 걷기도 하면서 점점 사람 꼴을 갖춰갔다. 이제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분명하고, 심지어는 하늘의 별을 함께 보면서 우리와 이야기할 정도가 되었다. 약 3년 반의 시간이 지나면서, 그렇게 아이도 무럭무럭 자랐고 우리 부부도 더불어 자랐다. 아무 때나 잠에서 깨고 배고프다며 울던 아기가 이제는 정해진 시간에 잠을 자고 일어나며, 정해진 시간에 유치원에 가는 착한(!) 어린이가 되었다. 아이가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자신의 평형을 찾아가는 사이, 우리 부부 역시 다시 평형 상태를 찾아가는 중이다.
아내와 내가 서로 만나 하나의 별을 이뤘다면, 저 아이는 그 별에 찾아온 또 다른 별이다. 두 별이 안정된 궤도를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한번 안정되면 평생 지속할 그런 쌍성계인 셈이다. 나는 이 과정이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이미 알기 때문에, 주위 신혼부부들에게 함부로 출산을 권하지도 못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불안정한 가스 구름 한 덩이가 쌍성계를 이룰 수 있다면 이 우주에 그보다 멋진 일이 어디 있을까. 나는 아직 대학원생이기에 마음 안쪽부터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지만, 이처럼 든든한 쌍성계를 완성해주는 가족이 있기에 오늘도 버틸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나는 박사과정을 시작하던 2010년에 아내와 결혼을 했다. 오랜 연애를 한 끝에 결혼에 성공했기 때문인지 몰라도 우리 신혼 생활은 매우 순탄했다. 결혼하기 전 아내가 직장을 그만뒀기 때문에 집안일을 대부분 맡아서 해줬고, 덕분에 나에게는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물론 초반엔 불편한 점도 있었다. 결혼 전에는 학교 담벼락 건너편에 혼자 살며, 집과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마구 섞여 있는 불규칙한 생활을 즐기던 나로서는, 타인과 함께 한집에서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는 점이 몸에 잘 맞지 않았다. 게다가 아내는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이라서 내가 아침에 자는 걸 보면 고개를 저으며 화를 내기 일쑤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마치 가스 구름이 정역학적 평형을 찾아가는 것처럼 둘이 함께 사는 삶에도 균형이 찾아왔다. 그리고 평형을 찾은 별이 마침내 스스로 빛을 내는 것처럼, 우리의 작은 신혼집에서도 드디어 빛이 나는 듯했다.
지도 교수님과 결혼 생활에 관해 이야기하던 중에 이런 대화가 오간 적이 있었다. “너는 신혼이 언제까지라고 생각하니?” “글쎄요. 한 3년 정도일까요?” “그건 첫 아이 임신 사실을 아는 순간까지야.” 우리 부부도 신혼의 꿈같은 시간을 보내다가, 약 2년 만에 그 꿈에서 깨어나야만 했다. 2012년 4월 아내는 임신했고, 그해 겨울 아이가 세상으로 나왔다. 아주 조그마한 딸아이였다. 처음 아이가 나오던 모습을 보며 나는 한동안 ‘자색고구마’라고 불렀다. 마침 그다음 해에 미국에 있는 연구소로 1년간 방문을 계획했던 터라 준비할 게 많았는데, 아이까지 태어났으니 여러 가지로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더 많아져 마음이 분주해졌다.
아이가 나오고 첫 2주간은 여전히 평화로웠다. 그 기간 아내는 산부인과에 딸린 산후조리원에 머물면서 회복 기간을 가졌고, 1월 초에 우리는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집에서 떠날 때는 둘이었는데, 셋이서 돌아오다니. 신기한 느낌이 드는 것도 잠시뿐, 곧 우리는 실전이 펼쳐진 것을 느꼈다. 임신 기간에 우리는 육아 관련 책도 읽고, 블로그에 올라온 경험담 등을 읽으며 마음의 준비를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지만, 육아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렇게 우리에게 아이가 찾아온 순간, 우리 부부가 힘겹게 찾았던 정역학적 평형상태는 아쉽게도 깨져야만 했다. 아이를 기르는 건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 잠을 못 자고 짜증을 부릴 때나 아파서 열이 날 때나 아이가 겪는 모든 순간마다 신경이 곤두섰다. 이런 아이를 아내와 내가 오롯이 돌보다 보니 우리는 수면 부족에 신경과민에 시달렸지만, 아이가 웃거나 애교를 부리는 걸 보면서 잠깐씩 행복을 맛볼 수 있었다. 낮 동안 독박 육아를 하는 아내를 돕느라 연구할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해졌지만 그건 감당해야 할 부분이었다. 연구한답시고 육아를 소홀히 했다가는 아내가 산후우울증에 걸릴 것이 뻔한 일이었다 (이미 걸렸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주 중에 출근한 시간에는 가능하면 최대한 집중하고, 돌아가면 육아와 집안일을 도왔다.
그리고 그때부터 주말에도 대부분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는 말도 하고 걷기도 하면서 점점 사람 꼴을 갖춰갔다. 이제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분명하고, 심지어는 하늘의 별을 함께 보면서 우리와 이야기할 정도가 되었다. 약 3년 반의 시간이 지나면서, 그렇게 아이도 무럭무럭 자랐고 우리 부부도 더불어 자랐다. 아무 때나 잠에서 깨고 배고프다며 울던 아기가 이제는 정해진 시간에 잠을 자고 일어나며, 정해진 시간에 유치원에 가는 착한(!) 어린이가 되었다. 아이가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자신의 평형을 찾아가는 사이, 우리 부부 역시 다시 평형 상태를 찾아가는 중이다.
아내와 내가 서로 만나 하나의 별을 이뤘다면, 저 아이는 그 별에 찾아온 또 다른 별이다. 두 별이 안정된 궤도를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한번 안정되면 평생 지속할 그런 쌍성계인 셈이다. 나는 이 과정이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이미 알기 때문에, 주위 신혼부부들에게 함부로 출산을 권하지도 못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불안정한 가스 구름 한 덩이가 쌍성계를 이룰 수 있다면 이 우주에 그보다 멋진 일이 어디 있을까. 나는 아직 대학원생이기에 마음 안쪽부터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지만, 이처럼 든든한 쌍성계를 완성해주는 가족이 있기에 오늘도 버틸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배현진 (연세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