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포닥 지원하기
0. 들어가며
이 글은 학위 디펜스가 끝나고 포닥 지원도 어느 정도 마무리된 시점에서 좀 들뜬 마음에 나름의 지원 과정을 정리해보고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 2011년에 처음 썼습니다. 그때는 이 코너의 취지처럼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느낌으로 쓰려고 했던 건데, YAM의 부탁을 받고 다시 이 글을 만지게 된 지금, 두어 번 더 잡 마켓에서 뒹굴고 또 지원을 준비하고 있는 시점에서는 전혀 그렇게 안 읽히네요. 처음부터 제가 쓴 내용이 사실 뻔한 내용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이 읽고 참고할 만한 내용이 있는지 지금은 좀 자신이 없네요. 지금 와서 보면 제 지원서가 그리 좋았다고 하기도 힘들고 각 지원 처 마다 요구사항이 다 달라서 이게 참 어렵습니다. 또한, 좋은 펠로쉽엔 제대로 지원해 본 경험이 없어서 이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다른 글이 또 있다면 더 좋겠네요. 그래서 이 글을 포닥 지원하기에 필요한 모든 것이 아니라, 외국에서 학위 하면 다 아는, 그러나 한국에서 학위 하면 간과하기 쉬운 (북미) 포닥 지원 요령과 시간 배분에 대해 여러분의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글로 받아들이기 바랍니다.
1. 전반적인 지원 과정
박사 졸업을 앞두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다음 자리를 잡는 것입니다. 졸업하자마자 정규직을 잡는 꿈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으니 비정규직 포닥 자리를 알아봐야겠지요? 젊은 교수님도 많이 오시고, 분위기도 요즘은 많이 개선된 것 같습니다만[1] 많은 사람이 학위 논문 발표에 목을 매고 논문 발표가 끝나고 나서야 포닥 자리를 찾는 게 과거의 분위기였습니다. 즉, 졸업이 우선이고 포닥 자리 찾기는 그다음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상 제대로 자리를 구하고자 한다면 둘을 같이 해야 합니다. 문제는 자기의 졸업 시기를 가늠하기 힘들 다는 것이죠. 학생이 스스로 자신의 졸업 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학원 생활을 잘했다는 얘기일 수 있습니다.
학생이 언제 졸업할 수 있을지 모르는 건 교수님들의 탓도 크겠습니다만, 결국 어영부영하다 제때 지원을 못 하면 손해 보는 건 자신이므로 스스로 좀 더 신경 쓸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주변의 다른 과 (특히 공대) 친구들이 포닥을 구하는 모습을 봤는데 공개경쟁 없이 막무가내로 원하는 연구실에 무작정 메일을 써서 자리를 구하더군요. 천문학계의 자리는 그나마 공개경쟁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좀 더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생각보다 알음알음으로 자리를 얻는 경우도 꽤 많습니다. (사실 개인 포닥은 인맥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긴 합니다만 그런 건 논외로 하죠) 그래도 대부분의 자리가 공개적으로 광고합니다. 거의 모든 자리가 AAS를 통해서 공고가 나옵니다[2]. 또한, 사람들이 스스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만든 Rumor Mill을 통해서도 정보 공유가 이루어집니다[3]. Rumor Mill은 누가 공식적으로 올리는 게 아니고 개인이 직접 고치는 형태로 일종의 '카더라 통신'입니다. 어쨌든 자리가 모두에게 공개되어 있고 모두에게 지원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대부분 자리에 수십 명은 당연하고, 좋은 자리에는 지원자가 백 명은 가뿐히 넘어갑니다. 그러니 최대한 많이 지원하는 게 답입니다.
포닥 자리는 수시로 나옵니다만 기본적으로 '시즌'이 있습니다. '시즌'은 10월부터 1월 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0월부터 1월 사이에 공고가 나온다기보다는 지원서 제출 마감이 10월부터 1월 사이입니다. 9월부터는 공고를 좀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부분 자리는 다음 해 9월부터 시작하는 자리이고 만약 된다면 그 전에만 학위를 받으면 됩니다. 졸업이 다가오면 이 '시즌'을 놓치지 않게 준비하세요.
내년 2월이나 8월에 졸업할 것 같다면 올해 10월부터 지원을 해야 합니다. 지원할 때 필요한 서류는
주저리주저리 말이 길었습니다만 늦어도 9월 중에는 필요한 서류의 기본 틀은 다 갖춰 놓는 게 좋습니다. CV는 박사 3년 차쯤 되면 미리미리 만들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갱신하는 것도 좋습니다. 요즘에는 대학원생들이 여기저기 연구비 지원하는 때도 많이 있으니 CV뿐만 아니라 연구 제안서 같은 것도 미리 써보는 것 같습니다. 10월부터는 본격적으로 지원합니다. 관련 있는 것 같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지원합니다. 그리고 개인 포닥이 아니라면 지원하는 기관의 같이 일하고 싶은, 또는 관련 있는 사람에게 따로 연락해서 이야기해 보면 좋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연구 재단에서 지원하는 학문후속세대양성 사업 중 박사 후 국외 연수로 지원받아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인맥을 좀 만든 뒤 다시 지원하고자 할 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지도 교수님과 미리 잘 얘기하세요. 막 열심히 지원하려고 추천서 부탁하러 갔는데 "내년에 졸업할 수 있겠어?"라고 하시면 좀 슬프지요.
2. 지원 서류 준비
a. Cover Letter
Cover letter는 일종의 표지인데 공식적으로 요구하는 때도 있고 안 하는 경우도 있어요. 특별한 말이 없다면 (북미에서는) 쓰는 게 기본입니다. 기본적으로 세 문단으로 구성합니다.
첫 문단은 내가 이 메일을 왜 쓰는지? 어디서 보고 어떤 자리에 대해서 지원하는지를 명확히 밝히고 시작합니다. 때로는 같은 곳에서 여러 가지 자리를 내기도 하니까 그런 걸 확실하게 해주면 서로가 편해요. 그리고는 자신의 배경을 씁니다. 내 현재 신분, 과거 신분을 요약해서 쓰세요. 다음은 연구 관심사를 한 줄 정도로 씁니다.
두 번째 문단은 연구 제안서에 쓴 내용을 요약해서 씁니다. 길면 안 됩니다.
세 번째 문단에는 지원처에 대한 열정을 가볍게 표시해주고, 내가 왜 여기 가야 하는지, 내가 이 기관에서 일하면 기관에 또는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를 언급해 주면 좋겠네요. 그리고 전화나 이메일 주소를 한 번 더 언급하면서 인터뷰 언제나 환영이라는 식으로 쓰는 게 보통이라네요. 마지막에 감사 표시는 꼭 하시고요.
그리고 제가 여기 와서 몇 번 커버 레터 쓰는 법을 들었는데 사소하지만 중요하게 생각 하는 게 몇 가지 있었습니다. 편지 형식을 지키세요. 본인 소속 학교의 graphic identity (로고)를 구할 수 있으면 삽입하면 좋습니다. “To whom it may concern:”으로 절대 시작하지 말라고 합니다. 개인 포닥 이라면 “Dear Prof. XXX:”로, 기관이라면 department, center, committee chair 이름으로, 정 모르겠으면 “Dear committee members:”로 시작하랍니다. 글은 기본적으로 다 active voice로 씁니다. 수동태 쓰지 마세요. 북미에서는 I를 강조합니다. “내가 뭘 했다”라는 식으로 쓰라더군요. 그런데, 유럽에서는 또 그렇게 쓰면 안 된답니다. 어렵죠?
b. CV
CV와 list of publication은 따로 준비해 두세요. 곳에 따라 따로 요구하는 곳도 있으니 따로 만들어 놓고 필요한 경우에 pdf 합치는 프로그램으로 묶어 주시면 됩니다. 기본적인 구성은 다들 어느 정도 형식은 아시죠? CV는 학과 교수님 거나 유명한 사람들 거 많이 공개되어 있으니까 참고하세요.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일관성입니다. 연도를 왼쪽에 썼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왼쪽에 씁니다. 중요한 걸 먼저 씁니다. Education이나 Employment, Award 같은 걸 제일 앞에 씁니다. CV는 resume과 달리 분량 제한이 없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간단히 쓰라고 썼었는데, 여기서 들으니 있는 거 없는 거 다 쓰라 내요. 아, 없는 건 쓰지 마세요.
c. 추천서
추천서는 쓰는 게 걱정이 아니라 부탁하는 게 걱정입니다. 교수님들께서 추천서를 써 주시는 것도 은근히 부담일 수 있으므로 어찌 됐건 미리 얘기해 놓는 게 좋습니다. 때에 따라 외국의 공동 연구자들에게 부탁할 때는 먼저 "좋은 추천서"를 써 줄 수 있는지를 물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거 대놓고 물어보면 민망하지만, 때에 따라 추천서를 써 주는 데 나쁘게 또는 그냥 중립적으로 써주는 경우가 있다네요. 이런 건 독이 될 수 있으니 미리 정확하게, 하지만 정중하게 물어보는 게 좋다고 합니다. (사실 이건 잘 모르겠습니다. 대부분은 써준다고 하면 잘 써주는 게 상식적이긴 하죠) 저는 최근에 공동 연구자는 아니지만 제 연구를 인용해서 관련된 대화를 좀 했던 관측하는 분에게 추천서를 부탁한 예도 있습니다. 한 번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흔쾌히 써 주더군요. 얼마나 잘 써줬는지 모르겠습니다.
추천서 요구 시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미리" 하는 겁니다. 일정도 "미리" 알려드리는 게 좋습니다. 예를 들어 9월에 미리 추천서를 부탁드릴 거라고 얘기해 놓고 승낙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11월 13일에 메일을 보내서 "아, 내가 15일 마감인 자리를 여기저기 넣었다. 추천서를 이리저리 보내 달라. 쌩유~" 이러면 곤란하지요. 지원할 곳 리스트를 미리 작성해서 여기저기 쓸 거란 것을 알려 드리면 좋습니다. 저는 구글 스프레드시트를 이용해서 공유했습니다.
여기 있는 정도의 정보를 대략 써 드리면 교수님들도 그리 어렵지 않게 언제 마감이 추천서를 언제쯤 쓸지 계획을 잡으시기 편하실 것 같아요.
(1) 9월에 미리 추천서가 가능한지 아닌지를 타진하고,
(2) 마감 한 달, 보름 전에는 어디에 쓸지 알려 드리고,
(3) 마감 1주일 전이나 3일 전쯤에 마지막 확인 메일을 보내세요.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지원처마다 추천서 제출 방식이 다른데 특히 그쪽 애플리케이션 시스템에서 추천인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는 경우는 추천인 메일 주소를 등록하자마자 보내주는 경우가 있고 지원서를 모두 완성해야 보내주는 경우가 있어요. 후자인 경우는 지원서를 최대한 빨리 마무리해서 보내는 게 좋겠지요. 교수님들은 항상 여기저기 다니시기 때문에 이날 부탁하면 다음 날 재깍 추천서 보내주고 뭐 이러시지 않아요.
d. Research Statement
역시 제일 중요한 것은 Research statement/proposal이죠. CV야 단숨에 좋아질 수가 없고, 추천서는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지원을 하고자 하는 시점에서 자신의 지원서를 강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Research statement/proposal을 잘 쓰는 것뿐입니다.
Research statement/proposal을 쓰는 방법에 대한 일반적인 조언은 AstroBetter Wiki나 구글링을 통해 금방 찾아볼 수 있고 저도 뭐 잘 못 쓰기 때문에 딱히 드릴 말씀은 없네요. (결국, 이 글은 별 내용이 없는 글이란 얘깁니다!)
일반적인 분량은 3-4 pages가 적당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도 지원처마다 다르므로 항상 공고를 꼼꼼히 읽고 거기서 원하는 대로써 주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때로는 current work과 proposal을 별도로 받기도 하고, proposal만 받기도 합니다. 개인 포닥의 경우 proposal은 크게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죠. (뭘 시킬지 정하고 뽑는데 연구 제안을 받을 필요는 굳이 없겠죠?)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그림이 있다면 반 페이지 미만으로 차지하게 넣는 것도 고려해 보세요. 마무리할 때 지원처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포함되면 아마도 가점이 생기지 않을까 싶네요. (제가 한 번도 누구를 뽑아 본 적이 없어서…) 정답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몇 가지 중요하게 생각할 점은,
(1) 능. 동. 태.
(2) 시키는 대로, 바라는 대로.
(3) 실수를 줄이자! – 떨어뜨릴 빌미를 제공하지 말자! 특히, 특정 기관을 언급하는 경우 제출하기 전에 꼭 다시 확인하기. 이게 섞이는 경우가 종종 있고, 그러면 바로 쓰레기통 직행입니다.
(4) 좋은 영어. 주변에 많이 읽히세요. 지도 교수님께도 한번 읽어 달라고 부탁하고, 친구들, 주변 포닥들 에게도 부탁하세요.
(5) 미리 쓰자. 글을 잘 쓰는 방법은 퇴고를 많이 하는 겁니다. 시간이 항상 부족하므로 퇴고를 하려면 미리 써야 합니다. 쓰고 나서 바로 읽는 것과 한동안 묵혔다가 읽는 게 또 차이가 큽니다. 최대한 빨리 완성 본 하나 만들고, 1주일 묵혔다가 읽고 고치고, 주변에 돌려서 읽히고, 고치고, 또 묵혔다가 읽고 고치고, 돌리고, …이정도네요.
3. 마치며
제가 포닥 생활 2년쯤 하고 한국에 갔을 때 해외 포닥 지원과 관련한 세미나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꿈 많은 대학원생에게 절망적인 말만 한 것 같은데, 지금도 마찬가지네요. 포닥을 한다고 정규직이 보장되지도 않는데, 포닥부터 쉽지 않죠. 학계에서 살아 남는 게 웬만한 슈퍼스타들을 제외하고는 어려운 건 매한가지 입니다. 그 중, 국내 박사는 여전히 출발선이 뒤에 있습니다. 지도 교수님이 학위과정 중에 연결고리를 만들어 주시지 않았다면 기본적인 네트워킹이 부족 할 수밖에 없죠. 학회에서 어필 하라고 늘 말씀은 하시지만 쉽지 않습니다. 글쓰기도 어려운데 영어로 글쓰기는 더욱 어렵죠. 주변의 도움은 사실 구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곳은 몰라도 여기서는 학생들 (포닥들) 취직에 대해 신경을 많이 써줍니다. 학생이나 포닥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세션들이 많이 있습니다. 커버 레터, CV, RS에 대해 기본적인 방향을 알려 줄 뿐 아니라, 무료로 읽어보고 구성이나 문법도 지적해 줍니다. 한국에서는 그런 서비스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배고픈 대학원생 돈 내고 하기도 쉽지 않고, 암튼 쉽지 않습니다.
좋은 연구 하시는 건 기본으로 하시고, 글 열심히 쓰시고, 네트워킹도 신경 쓰세요. 졸업을 앞둔 학생들은 꼭! 여름 방학 때 research statement/proposal을 씁시다.
[1] 2011년 서울대 천문학과 얘깁니다. 요즘 다른 학교들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2] http://jobregister.aas.org/
여기저기 데이터를 모아서 보기 좋게 만들어 놓은 곳이 몇 군데 있습니다. 최근에 알게 된 곳으로는
http://www.benty-fields.com/job_market
여기가 좋더군요.
[3] http://www.astrobetter.com/wiki/tiki-index.php?page=Rumor+Mill
이 글은 학위 디펜스가 끝나고 포닥 지원도 어느 정도 마무리된 시점에서 좀 들뜬 마음에 나름의 지원 과정을 정리해보고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 2011년에 처음 썼습니다. 그때는 이 코너의 취지처럼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느낌으로 쓰려고 했던 건데, YAM의 부탁을 받고 다시 이 글을 만지게 된 지금, 두어 번 더 잡 마켓에서 뒹굴고 또 지원을 준비하고 있는 시점에서는 전혀 그렇게 안 읽히네요. 처음부터 제가 쓴 내용이 사실 뻔한 내용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이 읽고 참고할 만한 내용이 있는지 지금은 좀 자신이 없네요. 지금 와서 보면 제 지원서가 그리 좋았다고 하기도 힘들고 각 지원 처 마다 요구사항이 다 달라서 이게 참 어렵습니다. 또한, 좋은 펠로쉽엔 제대로 지원해 본 경험이 없어서 이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다른 글이 또 있다면 더 좋겠네요. 그래서 이 글을 포닥 지원하기에 필요한 모든 것이 아니라, 외국에서 학위 하면 다 아는, 그러나 한국에서 학위 하면 간과하기 쉬운 (북미) 포닥 지원 요령과 시간 배분에 대해 여러분의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글로 받아들이기 바랍니다.
1. 전반적인 지원 과정
박사 졸업을 앞두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다음 자리를 잡는 것입니다. 졸업하자마자 정규직을 잡는 꿈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으니 비정규직 포닥 자리를 알아봐야겠지요? 젊은 교수님도 많이 오시고, 분위기도 요즘은 많이 개선된 것 같습니다만[1] 많은 사람이 학위 논문 발표에 목을 매고 논문 발표가 끝나고 나서야 포닥 자리를 찾는 게 과거의 분위기였습니다. 즉, 졸업이 우선이고 포닥 자리 찾기는 그다음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상 제대로 자리를 구하고자 한다면 둘을 같이 해야 합니다. 문제는 자기의 졸업 시기를 가늠하기 힘들 다는 것이죠. 학생이 스스로 자신의 졸업 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학원 생활을 잘했다는 얘기일 수 있습니다.
학생이 언제 졸업할 수 있을지 모르는 건 교수님들의 탓도 크겠습니다만, 결국 어영부영하다 제때 지원을 못 하면 손해 보는 건 자신이므로 스스로 좀 더 신경 쓸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주변의 다른 과 (특히 공대) 친구들이 포닥을 구하는 모습을 봤는데 공개경쟁 없이 막무가내로 원하는 연구실에 무작정 메일을 써서 자리를 구하더군요. 천문학계의 자리는 그나마 공개경쟁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좀 더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생각보다 알음알음으로 자리를 얻는 경우도 꽤 많습니다. (사실 개인 포닥은 인맥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긴 합니다만 그런 건 논외로 하죠) 그래도 대부분의 자리가 공개적으로 광고합니다. 거의 모든 자리가 AAS를 통해서 공고가 나옵니다[2]. 또한, 사람들이 스스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만든 Rumor Mill을 통해서도 정보 공유가 이루어집니다[3]. Rumor Mill은 누가 공식적으로 올리는 게 아니고 개인이 직접 고치는 형태로 일종의 '카더라 통신'입니다. 어쨌든 자리가 모두에게 공개되어 있고 모두에게 지원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대부분 자리에 수십 명은 당연하고, 좋은 자리에는 지원자가 백 명은 가뿐히 넘어갑니다. 그러니 최대한 많이 지원하는 게 답입니다.
포닥 자리는 수시로 나옵니다만 기본적으로 '시즌'이 있습니다. '시즌'은 10월부터 1월 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0월부터 1월 사이에 공고가 나온다기보다는 지원서 제출 마감이 10월부터 1월 사이입니다. 9월부터는 공고를 좀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부분 자리는 다음 해 9월부터 시작하는 자리이고 만약 된다면 그 전에만 학위를 받으면 됩니다. 졸업이 다가오면 이 '시즌'을 놓치지 않게 준비하세요.
내년 2월이나 8월에 졸업할 것 같다면 올해 10월부터 지원을 해야 합니다. 지원할 때 필요한 서류는
- Curriculum vitae (+ list of publication); CV
- Research statement (current + future research); RS
- Letters of recommendation (보통 3장, 국내는 2장)
- Cover letter
주저리주저리 말이 길었습니다만 늦어도 9월 중에는 필요한 서류의 기본 틀은 다 갖춰 놓는 게 좋습니다. CV는 박사 3년 차쯤 되면 미리미리 만들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갱신하는 것도 좋습니다. 요즘에는 대학원생들이 여기저기 연구비 지원하는 때도 많이 있으니 CV뿐만 아니라 연구 제안서 같은 것도 미리 써보는 것 같습니다. 10월부터는 본격적으로 지원합니다. 관련 있는 것 같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지원합니다. 그리고 개인 포닥이 아니라면 지원하는 기관의 같이 일하고 싶은, 또는 관련 있는 사람에게 따로 연락해서 이야기해 보면 좋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연구 재단에서 지원하는 학문후속세대양성 사업 중 박사 후 국외 연수로 지원받아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인맥을 좀 만든 뒤 다시 지원하고자 할 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지도 교수님과 미리 잘 얘기하세요. 막 열심히 지원하려고 추천서 부탁하러 갔는데 "내년에 졸업할 수 있겠어?"라고 하시면 좀 슬프지요.
2. 지원 서류 준비
a. Cover Letter
Cover letter는 일종의 표지인데 공식적으로 요구하는 때도 있고 안 하는 경우도 있어요. 특별한 말이 없다면 (북미에서는) 쓰는 게 기본입니다. 기본적으로 세 문단으로 구성합니다.
첫 문단은 내가 이 메일을 왜 쓰는지? 어디서 보고 어떤 자리에 대해서 지원하는지를 명확히 밝히고 시작합니다. 때로는 같은 곳에서 여러 가지 자리를 내기도 하니까 그런 걸 확실하게 해주면 서로가 편해요. 그리고는 자신의 배경을 씁니다. 내 현재 신분, 과거 신분을 요약해서 쓰세요. 다음은 연구 관심사를 한 줄 정도로 씁니다.
두 번째 문단은 연구 제안서에 쓴 내용을 요약해서 씁니다. 길면 안 됩니다.
세 번째 문단에는 지원처에 대한 열정을 가볍게 표시해주고, 내가 왜 여기 가야 하는지, 내가 이 기관에서 일하면 기관에 또는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를 언급해 주면 좋겠네요. 그리고 전화나 이메일 주소를 한 번 더 언급하면서 인터뷰 언제나 환영이라는 식으로 쓰는 게 보통이라네요. 마지막에 감사 표시는 꼭 하시고요.
그리고 제가 여기 와서 몇 번 커버 레터 쓰는 법을 들었는데 사소하지만 중요하게 생각 하는 게 몇 가지 있었습니다. 편지 형식을 지키세요. 본인 소속 학교의 graphic identity (로고)를 구할 수 있으면 삽입하면 좋습니다. “To whom it may concern:”으로 절대 시작하지 말라고 합니다. 개인 포닥 이라면 “Dear Prof. XXX:”로, 기관이라면 department, center, committee chair 이름으로, 정 모르겠으면 “Dear committee members:”로 시작하랍니다. 글은 기본적으로 다 active voice로 씁니다. 수동태 쓰지 마세요. 북미에서는 I를 강조합니다. “내가 뭘 했다”라는 식으로 쓰라더군요. 그런데, 유럽에서는 또 그렇게 쓰면 안 된답니다. 어렵죠?
b. CV
CV와 list of publication은 따로 준비해 두세요. 곳에 따라 따로 요구하는 곳도 있으니 따로 만들어 놓고 필요한 경우에 pdf 합치는 프로그램으로 묶어 주시면 됩니다. 기본적인 구성은 다들 어느 정도 형식은 아시죠? CV는 학과 교수님 거나 유명한 사람들 거 많이 공개되어 있으니까 참고하세요.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일관성입니다. 연도를 왼쪽에 썼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왼쪽에 씁니다. 중요한 걸 먼저 씁니다. Education이나 Employment, Award 같은 걸 제일 앞에 씁니다. CV는 resume과 달리 분량 제한이 없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간단히 쓰라고 썼었는데, 여기서 들으니 있는 거 없는 거 다 쓰라 내요. 아, 없는 건 쓰지 마세요.
c. 추천서
추천서는 쓰는 게 걱정이 아니라 부탁하는 게 걱정입니다. 교수님들께서 추천서를 써 주시는 것도 은근히 부담일 수 있으므로 어찌 됐건 미리 얘기해 놓는 게 좋습니다. 때에 따라 외국의 공동 연구자들에게 부탁할 때는 먼저 "좋은 추천서"를 써 줄 수 있는지를 물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거 대놓고 물어보면 민망하지만, 때에 따라 추천서를 써 주는 데 나쁘게 또는 그냥 중립적으로 써주는 경우가 있다네요. 이런 건 독이 될 수 있으니 미리 정확하게, 하지만 정중하게 물어보는 게 좋다고 합니다. (사실 이건 잘 모르겠습니다. 대부분은 써준다고 하면 잘 써주는 게 상식적이긴 하죠) 저는 최근에 공동 연구자는 아니지만 제 연구를 인용해서 관련된 대화를 좀 했던 관측하는 분에게 추천서를 부탁한 예도 있습니다. 한 번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흔쾌히 써 주더군요. 얼마나 잘 써줬는지 모르겠습니다.
추천서 요구 시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미리" 하는 겁니다. 일정도 "미리" 알려드리는 게 좋습니다. 예를 들어 9월에 미리 추천서를 부탁드릴 거라고 얘기해 놓고 승낙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11월 13일에 메일을 보내서 "아, 내가 15일 마감인 자리를 여기저기 넣었다. 추천서를 이리저리 보내 달라. 쌩유~" 이러면 곤란하지요. 지원할 곳 리스트를 미리 작성해서 여기저기 쓸 거란 것을 알려 드리면 좋습니다. 저는 구글 스프레드시트를 이용해서 공유했습니다.
여기 있는 정도의 정보를 대략 써 드리면 교수님들도 그리 어렵지 않게 언제 마감이 추천서를 언제쯤 쓸지 계획을 잡으시기 편하실 것 같아요.
(1) 9월에 미리 추천서가 가능한지 아닌지를 타진하고,
(2) 마감 한 달, 보름 전에는 어디에 쓸지 알려 드리고,
(3) 마감 1주일 전이나 3일 전쯤에 마지막 확인 메일을 보내세요.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지원처마다 추천서 제출 방식이 다른데 특히 그쪽 애플리케이션 시스템에서 추천인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는 경우는 추천인 메일 주소를 등록하자마자 보내주는 경우가 있고 지원서를 모두 완성해야 보내주는 경우가 있어요. 후자인 경우는 지원서를 최대한 빨리 마무리해서 보내는 게 좋겠지요. 교수님들은 항상 여기저기 다니시기 때문에 이날 부탁하면 다음 날 재깍 추천서 보내주고 뭐 이러시지 않아요.
d. Research Statement
역시 제일 중요한 것은 Research statement/proposal이죠. CV야 단숨에 좋아질 수가 없고, 추천서는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지원을 하고자 하는 시점에서 자신의 지원서를 강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Research statement/proposal을 잘 쓰는 것뿐입니다.
Research statement/proposal을 쓰는 방법에 대한 일반적인 조언은 AstroBetter Wiki나 구글링을 통해 금방 찾아볼 수 있고 저도 뭐 잘 못 쓰기 때문에 딱히 드릴 말씀은 없네요. (결국, 이 글은 별 내용이 없는 글이란 얘깁니다!)
일반적인 분량은 3-4 pages가 적당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도 지원처마다 다르므로 항상 공고를 꼼꼼히 읽고 거기서 원하는 대로써 주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때로는 current work과 proposal을 별도로 받기도 하고, proposal만 받기도 합니다. 개인 포닥의 경우 proposal은 크게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죠. (뭘 시킬지 정하고 뽑는데 연구 제안을 받을 필요는 굳이 없겠죠?)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그림이 있다면 반 페이지 미만으로 차지하게 넣는 것도 고려해 보세요. 마무리할 때 지원처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포함되면 아마도 가점이 생기지 않을까 싶네요. (제가 한 번도 누구를 뽑아 본 적이 없어서…) 정답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몇 가지 중요하게 생각할 점은,
(1) 능. 동. 태.
(2) 시키는 대로, 바라는 대로.
(3) 실수를 줄이자! – 떨어뜨릴 빌미를 제공하지 말자! 특히, 특정 기관을 언급하는 경우 제출하기 전에 꼭 다시 확인하기. 이게 섞이는 경우가 종종 있고, 그러면 바로 쓰레기통 직행입니다.
(4) 좋은 영어. 주변에 많이 읽히세요. 지도 교수님께도 한번 읽어 달라고 부탁하고, 친구들, 주변 포닥들 에게도 부탁하세요.
(5) 미리 쓰자. 글을 잘 쓰는 방법은 퇴고를 많이 하는 겁니다. 시간이 항상 부족하므로 퇴고를 하려면 미리 써야 합니다. 쓰고 나서 바로 읽는 것과 한동안 묵혔다가 읽는 게 또 차이가 큽니다. 최대한 빨리 완성 본 하나 만들고, 1주일 묵혔다가 읽고 고치고, 주변에 돌려서 읽히고, 고치고, 또 묵혔다가 읽고 고치고, 돌리고, …이정도네요.
3. 마치며
제가 포닥 생활 2년쯤 하고 한국에 갔을 때 해외 포닥 지원과 관련한 세미나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꿈 많은 대학원생에게 절망적인 말만 한 것 같은데, 지금도 마찬가지네요. 포닥을 한다고 정규직이 보장되지도 않는데, 포닥부터 쉽지 않죠. 학계에서 살아 남는 게 웬만한 슈퍼스타들을 제외하고는 어려운 건 매한가지 입니다. 그 중, 국내 박사는 여전히 출발선이 뒤에 있습니다. 지도 교수님이 학위과정 중에 연결고리를 만들어 주시지 않았다면 기본적인 네트워킹이 부족 할 수밖에 없죠. 학회에서 어필 하라고 늘 말씀은 하시지만 쉽지 않습니다. 글쓰기도 어려운데 영어로 글쓰기는 더욱 어렵죠. 주변의 도움은 사실 구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곳은 몰라도 여기서는 학생들 (포닥들) 취직에 대해 신경을 많이 써줍니다. 학생이나 포닥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세션들이 많이 있습니다. 커버 레터, CV, RS에 대해 기본적인 방향을 알려 줄 뿐 아니라, 무료로 읽어보고 구성이나 문법도 지적해 줍니다. 한국에서는 그런 서비스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배고픈 대학원생 돈 내고 하기도 쉽지 않고, 암튼 쉽지 않습니다.
좋은 연구 하시는 건 기본으로 하시고, 글 열심히 쓰시고, 네트워킹도 신경 쓰세요. 졸업을 앞둔 학생들은 꼭! 여름 방학 때 research statement/proposal을 씁시다.
[1] 2011년 서울대 천문학과 얘깁니다. 요즘 다른 학교들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2] http://jobregister.aas.org/
여기저기 데이터를 모아서 보기 좋게 만들어 놓은 곳이 몇 군데 있습니다. 최근에 알게 된 곳으로는
http://www.benty-fields.com/job_market
여기가 좋더군요.
[3] http://www.astrobetter.com/wiki/tiki-index.php?page=Rumor+Mill
김창구 ([email protected])